그의 학문 정신은 소중화(小中華) 의식으로 요약된다. 이는 유학의 도통(道統)이단군(檀君) 기자(箕子) 이래 동쪽으로 전수되었고, 특히 명나라가 중원에서 망한 후 송시열등의 노력으로 『춘추(春秋)』의 존주양이(尊周攘夷) 정신이 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존·유지된다는 관점으로서, 그의 「소중화설(小中華說)」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소중화 의식을 바탕으로 「기동악부(箕東樂府)」와 「내성지(奈城誌)」 같은 작품들이 저술되었다.
「기동악부」는 고조선에서 조선 후기까지의 사적과 인물에 대한 85편의 영사시(詠史詩)이며, 글자 수에융통성이 있는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성지」는 『황명사기(皇明史記)』·『노릉지(魯陵誌)』·『동합기(東合記)』·『육신전(六臣傳)』 등에서 기사를 취해 선인(先人)들의충열(忠烈)을 포폄(褒貶)한 것이다. 작품 구성은 단종(端宗)과 명나라 건문황제(建文皇帝)가연회를 열어 충의(忠義)를 기준으로 신하들을 각기 입장시키고시를 짓게 하는데 우리 측에 충의로운 신하가 많음을 명나라 건문황제가 부러워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 일종의 몽유록(夢遊錄) 수법을 차용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소중화 의식뿐만 아니라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표출되어 있다.
그는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에 대해서는 낙론(洛論)을 지지하면서도 절충적 입장을 취하였다. 저술로는 「천군설(天君說)」·「영대설(靈臺說)」 등성리학 관계 논술이 다수 있으나 그의 주요 저작은 경학 또는 의리학에 치우쳐 있다. 그것은 100여 개 이상의 도설(圖說)과「경의조대(經義條對)」 등의 논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명은고(明隱稿)』가있다.
1855년(철종 6)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내성지(奈城誌)
조선후기에 김수민(金壽民)이 지은 한문소설. 몽유록(夢遊錄)계 작품으로, 작자의 문집인 『명은집(明隱集)』권18에 수록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몽유자인 무명자(無名子)는 평소 춘추를 즐겨 읽었는데, 명산대천을 유람하여 가슴을 넓혔다.
내성(奈城)에 이르러 산수를 두루 구경하면서 비분한마음으로 시를 짓다가 관풍루(觀風樓)에 이르러 입몽하게 된다. 꿈 속에서 단종(端宗)이신하들을 거느리고 이르며, 뒤이어 명나라 건문황제(建文皇帝) 역시 신하들을 데리고 온다.
두 임금은 시대상으로도 50여 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친족으로부터왕위를 강탈당한 공통된 경험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서로 만나 자신들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로한다. 이어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오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하여 동문에는 방효유(方孝孺), 서문에는 성삼문(成三問)을두어 충신만을 들여보내도록 한다.
동서문을 통하여 17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들어온다. 단종의일과 관련하여 계유정란, 사육신 사건, 금성대군(錦城大君) 사건 등에 연루된 사람들이 망라되며, 신분상으로도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재상에서부터 엄흥도(嚴興道)와 영월 군민들, 건문의 일과 관련된 어부, 나무꾼, 품팔이꾼, 불승등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삽화와 연관된 인물들이다.
이렇게 충신열사들이 모인 다음, 시연(詩宴)이 베풀어진다. 시연이 무르익을 즈음 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남효온(南孝溫)·김종직(金宗直)·김일손(金馹孫) 등이찾아온다. 이들에 이어 영월과 정선군수, 연좌로 인해 죽은사람들, 동학사 초혼기에 기록된 인물들이 연회에 참석한다.
자리가 정리되자, 이번에는 왕과 신하들이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회포를 진술한다. 이 부분은 각 인물들이 자신의 행적을 말하고, 왕이나 무명자 및그 밖의 사람이 행적을 말한 이에게 미진한 구석을 질문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인물평의 성격을 띤 토론 단락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이어서 역사 일반의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앞서의 인물평 중심의 서술 방식과는구분되는 또다른 성격의 토론 양상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는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에서 논쟁점이었던 요순탕무(堯舜湯武)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토론의 주요 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드러나는 의식은 「원생몽유록」에서처럼 천도(天道)와 시세(時勢) 사이에서망설이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확고하게 유교적 이념을 관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작가는 기(氣)의 운수에 의해 일시적으로는 하늘의공도가 무너질 수도 있으나, 결국 기가 일(一)로 돌아가게 되면 이(理)가회복된다는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토론이 마무리되고 나면 또 한번의 시연이 전개된다. 인물들이 방금 여기에 모여 나눈이야기와 회포를 시로써 토로하는 것이다. 이 시연이 끝나면 모두가 떠나가고 몽유자는 각몽하게 된다.
이 작품은 ‘좌정(坐定)1-시연1-좌정2-토론1-토론2-시연2’의 순차적구성에 의해 꿈속 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곧 이 작품이 ‘좌정-토론-시연’의 서술구조로유형화된 몽유록 양식을 계승하였으면서도 각각의 단락을 거듭 전개하여 확장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방대한 등장인물 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단종과 건문의 일에 관련된 모든 삽화를작품 속에 수용하고자 하였다.
주제의식면에서는 춘추대의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단종의 일을 재평가하면서, 한때나마 명분에 어그러진시세는 결국 유교적 합리성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관철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몽유록의 양식적 특성을 계승하면서도 서사 세계를 대폭 확장하였으며, 유교적 대의명분을보다 확고히 하려고 한 작가의식 측면에서 볼 때, 몽유록 양식의 사적인 전개 과정상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고할 수 있다.